창경궁(昌慶宮)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

by 山口元 posted May 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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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昌慶宮)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으로,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이 생존한 상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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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昌慶宮)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으로,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이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었다. 창경궁의 역사는 성종 13년(1482) 창덕궁의 수리를 논하는 자리에서 대비전의 세 어른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폐허처럼 남아 있던 수강궁 수리를 명하면서 시작된다. 이때의 확장공사는 성종 15년(1484)에 명정전·문정전·통명전 등 주요 전각을 완공하는 것으로 대충 마무리되었으며, 그에 즈음하여 이름도 창경궁으로 새로 지었다. 이듬해 보완공사를 거쳐 궁궐다운 규모를 갖추게 된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기능을 일정 부분 보완하는 궁궐로서 자리잡게 된다. 즉, 창경궁은 궁궐로서 독립적인 규모를 갖추기는 했으나 당시에 왕이 기거하면서 정사를 보는 궁궐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그 뒤 창경궁은 임진왜란(1592)으로 도성 안의 모든 궁궐이 불타면서 함께 소실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궁궐 복구가 시작되어 1615년(광해군 7)에 광해군이 중건된 창덕궁으로 이어하면서 바로 다음해에 이웃해 있던 창경궁 중건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창경궁은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으로 창덕궁과 함께 또다시 소실되었다. 그후 인조는 경덕궁(경희궁)에서 9년간 머물다가 완전히 복구도 되지 않은 창덕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인조 11년(1633) 창경궁을 수리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광해군 때 인왕산 밑에 지어놓은 인경궁의 전각을 헐어 옮겨 지었기 때문에 짧은 시일 안에 손쉽게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후에도 크고 작은 화재와 수리가 이어지다가 순조 30년(1830) 다시 한번 큰 화재가 발생하여 환경전·경춘전·함인정·빈양문·숭문당 등 많은 전각이 재가 되었다. 창경궁의 복구는 순조 33년(1833)에 이루어지는데 이때의 공사는 정조 14년(1790)에 소실되었던 통명전을 비롯해 환경전·경춘전·숭문당·함인정·양화당·영춘헌·오행각 등을 중건하는 것으로, 이듬해 마무리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내전의 전각은 대부분 이때 세워진 것들이다.
 
창건 이래 끊임없는 소실과 복원을 거듭하면서도 궁궐로서의 격과 위상을 지켜왔던 창경궁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1907년 순종이 즉위하면서부터이다. 순종은 즉위하자 거처를 경운궁(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이 일을 계기로 일제는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그해부터 창경궁의 전각을 헐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융희 3년(1909)에 개원하였다.
 
그리고 내친김에 1911년에는 궁궐의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꾸어 궁궐이 갖는 왕권과 왕실의 상징성을 격하시켰다. 또한 중궁전인 통명전 북쪽 언덕, 즉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자경전이 있던 터에 일본풍의 박물관을 건립하였으며1), 1912년에는 지금의 율곡로 개설을 시작하여 창경궁과 종묘를 단절시켜놓았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창경궁은 해방 후 1970년대까지 줄곧 서울의 대표적 유원지로 이용되었다. 그 유명한 창경원 벚꽃놀이 한번 못해본 사람은 낭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는 공사는 1984년부터 시작되었다. 창경원에 있던 동물원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일본인이 고의적으로 심어놓았던 벚나무도 뽑아내었다. 1986년에는 명정전 회랑과 문정전 등 일부 전각을 복원하였으며, 해방 이후 조선시대 왕실의 도서를 관리하던 장서각의 이름으로 남아 있던 자경전터의 박물관은 그 기능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넘겨준 뒤 1992년 헐리고 지금은 녹지가 되었다.
 
현재 창경궁에는 정문 영역의 홍화문과 옥천교가 있고, 외전 영역으로는 동쪽의 명정문과 서쪽의 빈양문을 경계로 명정전·문정전·숭문당이 있으며, 내전 영역으로는 함인정·경춘전·환경전·통명전·양화당·영춘헌·집복헌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창덕궁에 속한 부용지 일대까지 아우르던 후원 영역에는 춘당지와 관덕정, 그리고 일제 때 세워진 식물원이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경궁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초판 2004., 5쇄 2009., 돌베개)